[어쩌다 UX 라이터] 다양한 무기가 있는 제너럴리스트의 일
숨고 UX 라이터 정서우
글만 쓴다고 될 게 아니라는 거죠. 일단 협업이 필수이다 보니까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정말 중요해요. 프로덕트 기반으로 사고해야 하니까 UX도 잘 알아야 해요. 디자이너가 될 필요는 없지만 디자이너의 사고방식은 이해할 수 있어야 하죠. 라이팅의 성과를 측정하려면 데이터도 볼 수 있어야 해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이자 멀티 태스커(Multi tasker)가 될 수밖에 없어요.
정서우
생활 솔루션 플랫폼 ‘숨고’에서 UX 라이터로 일하고 있다. 조직 내에서 콘텐츠 마케팅과 UX 라이팅을 병행하다 스스로 UX 라이팅의 쓸모를 입증하고 포지션을 만들었다.
커리어 한눈에 보기
눔 코리아(헬스케어 서비스) • User Success Manager (2016년 6월~2017년 11월)
“건강에 원래 관심이 많았어요. 눔을 사용하여 건강을 되찾은 고객을 인터뷰했고 성공 사례를 콘텐츠로 만드는 일을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콘텐츠 마케팅을 한 거였어요.”
DS스쿨(데이터 사이언스 교육기관) • Customer Deriven Marketer (2018년 7월~2020년 5월)
“데이터 강의를 듣고 유의미한 도움을 얻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었어요. 인터뷰 일을 계속하다 보니, 내가 이걸 좋아하고 잘한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고객과 직접 얘기하는 게 너무 재미있고 항상 교훈을 얻어서 유익했어요.”
숨고(생활 솔루션 서비스)
콘텐츠 마케터 (2020년 6월 ~ 2022년 4월)
UX 라이터 (2022년 5월~현재)
“숨고엔 1,000개가 넘는 서비스가 있다 보니 더 다양한 주제로 인터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또, 숨고가 완전히 데이터 기반으로 일하는 조직이어서 콘텐츠를 데이터로 분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죠. 그러다 제가 더 잘할 수 있는 UX 라이팅으로 직무를 변경해 숨고의 첫 번째 UX 라이터가 되었어요.”
2023년 3월 5일에 진행된 인터뷰로, 읽는 시점에 따라 현재와 다른 사실이 일부 있을 수 있습니다.
어쩌다 UX 라이터
적성에 맞는 논리적이고 구조화된 글쓰기
콘텐츠 마케터로 일할 때 필요했던 글쓰기는 성향상 잘 안 맞았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SNS나 뉴스레터 콘텐츠를 제작할 때 제 감성을 담아야 하는 게 어려웠어요. 하지만 UX 라이팅은 감성을 담을 필요가 없고, UX 퍼널을 기반으로 논리적이고 구조화된 글쓰기라는 게 적성에 잘 맞았어요.
콘텐츠 마케터 커리어
인터뷰를 바탕으로 콘텐츠를 만들다
숨고에 처음엔 콘텐츠 마케터로 입사했어요. 고수 사용자(이하 ‘고수’)와 고수가 필요한 사용자(이하 ‘고객’)를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SNS 콘텐츠나 뉴스레터를 제작했어요. 숨고가 데이터 기반으로 일하는 회사여서 콘텐츠의 성과도 데이터로 파악할 수 있게 기반도 마련했어요. 콘텐츠 전용으로 태블루(Tableau) 대시보드를 기획했고, SEO 페이지를 구축하고 데이터로 성과를 확인했어요.
숨고 이전에도 인터뷰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해왔고, 저는 인터뷰가 좋아서 콘텐츠 마케팅을 하게 된 케이스예요. 그런데 인터뷰가 인터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걸 가지고 SNS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데, SNS에 맞는 뽀송뽀송하고 감성적인 글쓰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인터뷰는 고객의 목소리를 담는 거라 저만의 감성을 크게 담을 필요는 없지만 SNS는 필요해요. 예를 들면 이번 주의 뉴스레터 컨셉이 3월이면 ‘새로운 시작’, ‘따스한 봄’ 같은 감성적인 표현으로 인트로를 열어야 해요. 그런데 이런 표현으로 독자의 공감을 얻어내는 게 유난히 힘들더라고요.
완벽하게 몰입할 수 있는 글쓰기를 발견하다
당시 마케팅팀의 콘텐츠 마케터 분이 프로덕트팀의 FAQ 콘텐츠 작업을 알음알음해주고 있었어요. 그러다 그분이 퇴사하시면서 FAQ 업무가 제 성향에 잘 맞을 것 같다고 하시며 넘겨주고 가셨어요.
당시 새로운 피처가 많은 큰 배포가 있어서 FAQ 작업이 새로 필요했는데요. 전문가가 쓰지 않은 글은 역시 너무 장황해서 고객이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어요. 제가 작업하며 가장 필요한 내용만 남기는 작업을 했는데, 지루하지 않고 재밌더라고요. 지금은 CX팀이 FAQ 를 담당하지만, FAQ 작업 경험을 통해 제가 흥미로워하는 글쓰기의 성격을 알게 되었어요.
덜어내는 글쓰기의 매력
FAQ 작업이 계기가 돼서 프로덕트 팀의 다른 업무도 할 기회가 생겼어요. 어떤 퍼널 한 곳에서 계속 이탈이 많은데 문구만 좀 개선해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요청을 보니까 문구 하나만 봐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닌 거예요. 이어진 앞 뒤 화면을 보다가 결국 해당 화면의 진입점(Entry Point)부터 마지막까지 다 살펴봤죠. 어느새 제가 모든 플로우 단계의 화면을 전부 캡처해서 피그마에 다 얹혀놓고 논리 구조를 보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아 이런 논리 때문에 여기에 이탈이 많을 거야.’라는 판단을 하게 되고요.
그렇게 전체 플로우를 살펴보다 보니 다른 데서도 이상한 문구들이 보여서, 처음에 요청 주셨던 건 문구 하나였지만 결국 전체적으로 피드백을 다 드렸어요. 피그마 한 판이 나오더라고요. 그때 새벽 3시까지 작업을 했는데, 너무 재밌게 몰입했던 기억이 나요.
작업 과정에서 저의 감정을 담을 필요가 없다는 게 정말 좋았어요. UX 플로우의 퍼널을 살펴보며 글을 쓰는데 막혔던 뭔가가 뚫리는 느낌마저 들었어요. 콘텐츠 마케팅에선 하나의 주제를 정성스럽게 포장하는 글쓰기가 필요했다면, UX 라이팅에선 다 덜어내고 정말 필요한 정수만 남기잖아요. 그런 덜어내는 글쓰기가 저에게 잘 맞더라고요.
UX 라이터 커리어
콘텐츠 마케터에서 UX 라이터가 되다
처음에 작업을 요청 주셨던 PO에게 라이팅 결과물을 보여드리며 프리젠테이션했어요. 왜 이런 문장이 나왔는지 논리 구조를 설명드렸는데 되게 만족스러워하셨어요. 마케팅 팀장님도 제게 “서우님은 콘텐츠 마케팅 작업도 잘하지만 UX 라이팅 작업이 더 잘 맞는 거 같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 후로 조금씩 조금씩 프로덕트 팀의 UX 라이팅 일감을 늘려갔어요. 그러면서 조금씩 라이팅 업무의 프로세스를 고도화해나갔어요. 예를 들면 전에는 업무를 DM으로 받았다면 공식 업무 요청 채널에서 Jira 티켓으로 관리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전 마케팅팀 소속의 콘텐츠 마케터잖아요. 일의 노선을 제대로 정리해야 할 시기가 왔어요. 스스로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 UX 라이팅 쪽으로 가고 싶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감성보다 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글쓰기라는 점이 적성에 맞았고, 무엇보다 UX 라이팅 업무를 할 때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일하다 보니 직무에 대한 확신이 섰어요. 이런 생각을 마케팅 팀장님한테도 말씀드렸고, 감사하게도 제 의견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셨어요.
UX 라이터의 필요성을 증명하다
하지만 제가 UX 라이터가 되면 회사 입장에선 리소스에 돈을 더 들이는 거였어요. 저를 대신할 콘텐츠 마케터를 한 명을 새로 채용해야 하고, 숨고에 지금까지 없던 직무인 UX 라이터에 대한 리소스를 추가해야 됐으니까요. 그래서 UX 라이터의 효용성을 증명하는 게 필요했어요. 제가 문장을 작업하면 확실히 이전보다는 낫긴 한데, 이게 비용을 들여서까지 해야하는 가치있는 일인지 설득이 필요했죠.
UX 라이팅이 필요해 보이는 건들을 10개 정도 우선 리스트업 하고 임팩트가 클 거 같은 건을 추렸어요. 디자인도 같이 바뀌어야 하는 건은 제외했어요. 회사에선 정말 UX 라이팅만의 성과를 보고 싶어 했거든요. 그래서 디자인은 아예 건들지 않고 정말 라이팅만 바꿔서 성과를 볼 수 있는 실험을 위주로 작업했어요. 또, 매출이랑 관련 있는 퍼널을 골랐어요. 라이팅의 비즈니스 효과를 금액적으로 환산하기 쉬우니까요.
당시 회사에선 마케팅 알림 동의가 너무 낮은 게 문제였어요. 그런데 AS-IS를 보니까 사용자가 수신 동의를 안 하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너무 떡하니 ‘광고성 수신 동의’라는 것을 내세우는데 그 어떤 고객이 동의를 하겠어요. 그리고 고객과 고수가 이점으로 느낄만한 부분이 딱히 없어 보였어요. 또 설정 방법까지 알려주니 정보가 과다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광고성 수신 동의 느낌이 나지 않고, 사용자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준다는 느낌의 타이틀로 바꿨어요. 그리고 서브 문구도 조금 더 고객과 고수 각각이 이점으로 느껴지도록 작성을 했어요. 설정 방법은 있으면 사용자에게 도움이 되지만 이미 많은 텍스트가 들어가 있어 인지가 어려울 거 같았어요. 그래서 삭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CTA 문구를 좀 더 직관적으로 바꿨어요.
2천만 원 수익을 낸 라이팅 실험
마케팅 알림 수신 동의 모달 실험을 두 번 진행했는데요. 첫 번째 실험에서 웹이랑 모바일 웹에선 전환율이 유의미하게 잘 나왔어요. 그런데 앱에선 엄청 하락한 거예요. 문구가 똑같은데 플랫폼 형태에 따라 성과가 다른 게 신기했어요.
고민을 해보니 결론은 사용자의 숨고에 대한 이해도와 사용 의지(인텐트)가 달라서였어요. 앱은 회원가입까지 마쳤고, 숨고 서비스 사용 경험이 있는 유저도 있다 보니 이미 인텐트가 너무 높은 거예요. 그러다 보니 CTA버튼을 ‘유용한 정보 받기’라고 했을 때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던 거죠. 앱은 고객과 고수의 인텐트가 이미 높으니까 ‘그래서 사용할래? 말래?’를 물어보는 CTA 문구가 더 효과가 있었던 것이고요.
앱과 모바일웹은 이런 식으로 실험을 2차까지 돌려서 최적화된 문구를 찾아냈어요. 이렇게 나온 최종 문구의 효과를 돈으로 계산해 봤어요. 마케팅 알림 수신 동의 모달의 문구를 바꾼 것만으로 매월 500만 원이 넘는 추가 이익이 생겼더라고요. 이런 실험을 7개 정도 진행했어요. 결과적으로 UX 라이팅 작업만으로 2,000만 원 정도의 이익을 냈다는 계산이 나오더라고요. 이렇게 저는 숨고의 첫 UX 라이터로 직무 전환에 성공했고, 프로덕트 팀으로 옮기게 됐습니다.
<서우 님이 진행했던 UX 라이팅 실험>
- 마케팅 수신 동의 모달 UX 라이팅 개선
- 특정 퍼널 이탈 시 뜨는 이탈 방지 모달 U X라이팅
- 전환율을 높여야 되는 피처 진입점에 툴팁 UX 라이팅
- 특정 피처 네이밍 개선을 통한 진입점 전환율 개선
- 고객 맞춤 서비스 제안 문구 개선을 통한 UX 라이팅
UX 라이터에 대한 나의 정의
다양한 무기가 있는 제너럴리스트의 일
일을 해보니 UX 라이터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이자 멀티 태스커(Multi tasker)가 될 수밖에 없어요. 글만 쓴다고 될 게 아니라는 거죠. 일단 UX 라이팅은 협업이 필수이다 보니까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정말 중요해요. 또, 프로덕트 기반으로 사고해야 하니까 UX도 잘 알아야 해요. 디자이너가 될 필요는 없지만 디자이너의 사고방식은 이해할 수 있어야 하죠. 그리고 라이팅의 성과를 측정하려면 데이터도 볼 수 있어야 해요.
멀티 태스킹 자체를 전문가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커뮤니케이션, UX 등의 역량 없이 글만 쓴다면, 내 일이 다른 사람의 일을 글로써 도와준 것에 그쳤다고 느끼기 쉬워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 당연히 동기 부여가 떨어지겠죠.
UX 라이터가 되고 싶은 콘텐츠 마케터에게
UX 라이팅에선 문장을 길게 쓰지 않고 정수만 남기는 훈련이 필요해요. 긴 글은 조사라든지 어미의 순서가 바뀌어도 크게 어색함 없이 그냥 읽히는데, UX 라이팅은 짧은 글이다 보니까 조사 하나를 바꿔도 느낌이 너무 달라요. 띄어쓰기 한 칸이 있느냐 없느냐도 중요한 문제죠. 그래서 짧게 잘 쓰는 훈련이 필요해요. 또, 논리적으로 사고하려고 하고요.
그리고 UX 공부가 필수인데요. 저도 UX 관련 책을 엄청 많이 사서 봤어요. 근데 결론은 결국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니 UX 공부도 별로 어렵지 않았어요. 전엔 몰랐던 UI 용어를 익히는 것도, ‘아 이런 걸 햄버거 버튼이라고 부르는구나, 이런 게 있구나.’ 하며 그냥 재밌게 배웠어요. 오히려 UX에 대한 어려움보다는 제가 마케팅 베이스다 보니까 프로덕트 팀원 입장에서 신뢰하지 못할 거라는 걱정이 더 컸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실제로 같이 일하면서 좋은 라이팅 결과물을 내고, 또 성과를 매출로 입증하면서 이 부분은 해소가 됐어요. 이제는 PO와 프로덕 디자이너가 고민이 있으면 먼저 저를 찾아와서 UX 라이팅 고민을 나누고, 협업을 요청합니다.
저도 원래 콘텐츠 마케터였잖아요. 콘텐츠 마케터라면 이미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량이 있어요.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객의 시선을 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니까요. 여기에 이제 해당 제품에 대한 높은 이해도, 커뮤니케이션 능력, 데이터를 보는 능력까지 더해진다면 성공적으로 커리어 전환에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
글 유다정 | 사진 김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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